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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지만 다른 안건에 있어서는 광해군과 정면 대립하는 일도 많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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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인인 영의정 이원익을 포함하여 북인에게 밀린 남인계 인사들과 서인계 인사들을 일부 등용하고, 소북파를 대북파 못지않게 대우하는 등 초기에는 당쟁을 수습하려고 노력했으나 대북파의 반발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.
정철은 광해군을 왕세자로 추천했으나, 신성군을 모함한다는 이유로 왕의 노여움을 사 파직을 당하고 유배를 가게 되고, 동인은 이 일을 처리하게 되는데, 많은 서인을 외직으로 쫓아버리면서 선조는 유성룡을 좌의정으로 올리고 을 멀리하며 들을 가까이 두었다.
어려서부터 사내아이들에 결코 지는 법 없는 당찬 성격으로 궐내 어른들을 당황케 한 게 여러 번, 궐내 무시 받던 궁녀나 하위 층 여성들의 고충이 눈에 보이기만 하면 앞에서는 옹주의 위엄을 지키기 위해 조신한 척 행동하지만 뒤에서 몰래 그들을 대신해 통쾌한 복수도 서슴지 않는 대범한 성격이었다.